책과 영화 이야기

클루지

수에르떼 2022. 8. 2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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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루지: 잘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이 조화롭지 않게 모여 비참한 전체를 이룬 것
클루지의 예 1) 인간의 척추: 단 한 개의 기둥으로 몸무게 전체를 지탱해야 해서 엄청난 부담을 감수해야 함. 하지만 과거 사족보행에서 진화하였기 때문에 척추의 형태가 그대로인 것 (진화에 따르지 못한 클루지)
작동하기만 하면 되는, 진화의 산물에 불과한 신체의 클루지
우리의 마음도 ‘클루지’이다.
우리의 마음, 심리 속 결함 중 일부는 진화가 더 나은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되는 것일 수 있다.

“진화는 완벽의 문제가 아니다. ‘적당히 만족하기’ 적당히 좋은 결과를 얻는 일의 문제일 수도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화는 세련되거나 클루지 혹은 두 개가 공존하는 것일 수 있다.”

어떤 생물이 최적 수준에 못 미치는 설계를 갖는 원인은 여러가지 일 수 있다.
우연이거나, 환경의 급격한 변화일 수도 있다.
역사는 진화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 어떤 시점에서 진화의 가능성이란 이전에 진화한 것의 제약을 ‘크게’ 받기 때문.
인간의 척추가 이렇게 생긴 까닭은 그것이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형태가 아닌, 이미 있던 네발짐승의 척추를 토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진화를 반복해오면서 생명을 잠시 멈추고 진화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계속된 에너지 공급을 하면서 동시에 진화되어야 하므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옛 것 위에 조금 더 나은 것을 쌓는 것이 되곤 한다. 즉,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닌 옛 체계 위에 새 체계가 얹히는 형태를 띄는 것이다. 인간은 기껏해야 몇 십만 년을 살아왔고 복잡한 문화와 사고력을 갖춘지 겨우 5만 년쯤 되었을 것이므로 인간의 마음 역시 진화의 관성이 축적되기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우리의 마음에는 클루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약물에 중독되거나 티비에 빠져 살거나 왜곡된 기억을 믿거나 애매한 표현을 사용한다. 클루지가 많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 가진 마음 속 클루지를 깨닫고 이해해야 불완전함 속에 더 나은 모습을 가질 수 있다.

1. 맥락과 기억
우리는 왜 열쇠나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가스불을 켜놓고 집을 나왔는지 기억하지 못할까?
컴퓨터의 모든 항목은 고유한 위치(주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정 내용을 불러일으키는데 오류 없이 정확한 정보값을 가져온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원하는 내용이 어디에 저장되어있는지 알 수 없다. 대신 인간은 ‘맥락 기억’을 가진다. 기억 속에서 특정 내용을 꺼내기 위해 맥락, 단서를 이용한다.
다른 장소보다 부엌에 있을 때, 요리법에 대해 더 잘 기억해내는 식이다.
맥락 의존적인 기억은 컴퓨터처럼 모든 정보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이 아닌 ‘우선순위’를 매기기 때문에 자주, 최근에, 중요한 것을 먼저 기억해낸다. 이 때문에 컴퓨터처럼 빠르지 못하다는 점을 보완할 수 있다. 그리고 원하는 정보가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지 알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맥락, 단서에 의존하기 때문에 어제 먹은 것과 그제 먹은 음식을 혼동하기도 하고 단서 중심의 체계에 신뢰성이 의심간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맥락 기억은 ‘예비효과’가 있어서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몇 가지 다른 기억들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촉발한다. 실제로 한 실험에서 ‘노인’을 연상케하는 단어들을 정리하게 한 후 그들이 실험 장소를 떠나는 모습을 녹화하였는데 실제 걸음 속도가 느려졌으며 또 다른 실험에서는 ‘교수, 지적인’ 등의 단어를 접한 사람들이 다른 단어를 접한 사람들보다 과제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고 한다.
예비 효과의 안 좋은 면모는 예를 들어 우울감이 들기 시작하면 더더욱 부정적이고 우울한 기억들이 떠오르거나 우울한 노래를 듣는 등 점점 더 우울한 기분으로 빠져들도록 만든다.
이렇듯 기억에 별도의 주소가 있는 것이 아닌 맥락을 중심으로 기억이 조직되면 잘못된 기억이라는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 잘못 투옥되었다가 후에 DNA 검사를 근거로 풀려난 사람들을 조사하자 잘못된 판결의 90%가 잘못된 목력자 증언에 근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맥락 바탕으로 이루어진 기억력을 100% 신뢰하기란 어렵다는 의미를 가진다.
우리의 머리가 컴퓨터와 같다면 항상 1을 하다가 2를 해야하는 경우, 2를 우선 순위로 올리면 되기 때문에 일을 처리하는데 문제가 발생할 리 없지만, 우리는 흔히 빈번한 행동-퇴근하면 집으로 향하기, 오늘의 목표-우유 사러 슈퍼 들렸다가 집으로 향하기 를 혼동하여 원하던 일을 못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어떤 사건이 정확히 몇 년도, 언제 일어났는지 기억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러한 허술한 기억에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몇 가지 편법이 존재한다.
1) 기억 재구성 전략: 사건 A의 정확한 일자는 기억 안 나지만, 앞 뒤로 B와 C라는 사건 사이에 존재한다는 걸 추론하기
2) 출처 기억 전략: 어떻게 내가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 어디서 봤는지 출처를 추론하며 기억 찾아내기
3) 장소법 전략: 어떤 큰 건물을 생각해내고 각 기억마다 방, 부엌, 거실.. 위치를 부여하여 생각해내기
4) 운율과 박자를 이용한 전략: 노래로 만들어서 부르기
5) 반복 기억 전략: 반복적으로 암기함으로써 머릿 속에 저장하기

2. 오염된 신념
우리의 마음은 쉽게 속아넘어간다. 점성술사의 말을 쉽게 믿기도 하고, 어떤 사람의 한 가지 긍정적인 측면을 보고 무의식중에 일반화하여 다른 속성들까지 좋게 보는 후광 효과 혹은 그 반대의 갈퀴효과 (한 가지 부정적인 측면을 보고 나머지도 안 좋을 것이라고 일반화하는 것)를 행하기도 한다. 이는 우리의 뇌가 어떤 사람을 특정지을 때 머릿 속에 떠도는 것과 관련지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초점 맞추기 착각’이라고 불리는 현상인데 단순히 사람들의 주의를 다른 정보로 돌림으로써 쉽게 사람들의 생각을 조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 ‘현재의 행복도’를 묻고 나서 ‘지난 달에 데이트를 몇 번 했는지’ 묻자 행복과 연애의 상관관계는 없었으나, 두 질문의 순서를 바꾸자 행복의 초점이 ‘낭만’에 맞춰져 데이트 횟수와 행복도가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고 한다. 때문에 우리가 믿는다고 말하는 ‘신념’ 또한 변덕스러운 기억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평소 연애와 행복을 연관짓지 않는 학생들도 이 실험에서는 쉽게 휘둘렸으니 말이다.

우리는 어떤 기억이든 가장 먼저 생각나거나 가장 최근의 것을 다른 자료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때문에 ‘나의 경험’이 우선시될 수 밖에 없기에 공동작업이나 공동집필, 집안일 등에 대해서 타인이 공헌한 것보다 내가 한 것이 많다고 느끼는 오류도 범한다. 정서적 오염은 강력한 것이라 전혀 상관없는 정보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하는데, 무작위 숫자가 적힌 돌림판을 돌린 후, 역사적인 년도를 묻는 질문을 했을 때 낮은 숫자가 나온 사람들이 제시한 년도가 평균적으로 현저히 낮았고 심리학에서는 이를 ‘닻내림 효과’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것이 무관한 정보에 의해 기억이 오염되는 유일한 경우는 아니다.
실제로 실험 결과에 따르면 펜에 입술이 닿지 않도록 물고 있는 참가자(입술이 닿지 않기 위해 입술 끝이 위로 올라가 미소지은 모양새)들이 입술을 가운데로 모아 펜을 물고 있는 참가자들보다 특정 만화를 보여줬을 때 더 재미있다고 평가했으며 유명인의 이름을 적을 때,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둔 사람들이(접근) 아래로 둔 사람들(회피)보다 해당 유명인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우리는 우리들에게 친숙한 것을 좋은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이를 ‘단순한 친숙 효과’라고 부른다. 특정 글자를 대할 때 친숙한 글자를 낯선 글자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곤 하는데, 이는 과거를 살펴보면 우리 조상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것은 위험요소가 있기 때문에 어쩌면 그 때부터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안이 되는 음식을 대체로 평소 가장 즐겨 먹던 음식을 찾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정치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미 시행중인 정책을 새로운 정책보다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실질적으로 현재 시행중인 정책이 잘 이행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가 없는 경우에도 그러하다.
이처럼 친숙한 것에 매달리는 경향은 상황이 위협적일수록 강해져 자신의 집단, 가치 등에 더 강력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본인이 소속된 집단에 대해서는 더 친절한 태도를,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더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우리의 사고는 빠르고 자동적이며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사고인 ‘반사체계, 선조 체계’와 신중하고도 판별력 있게 천천히 진행되는 사고인 ‘숙고 체계’가 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를 알아보거나, 울툴불퉁한 길을 걸을 때 속도를 조정하는 등의 것이 반사체계에 해당한다. 하지만 더 오래 생각하는 숙고 체계라고 해서 항상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진화의 최근 산물로서 더 정교한 것은 사실이나 반사 체계가 제공하는 간접 정보에 대부분 의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념을 위협하는 증거는 배척한다. 우리의 신념을 위협하는 것보단 우리의 신념에 들어맞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이를 ‘확증 편향’이라 부른다. 한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2 4 6 을 보여주고 규칙을 찾으라 할 때 대부분의 사람은 6 8 10, 10 12 14 를 물어볼 뿐 1 3 5나 1 4 6 등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지 규칙은 임의의 세 숫자를 작은 것부터 말하기였는데 말이다.
또한 우리는 현실과 일치하든 일치하지 않든 세상을 긍정적으로 지각하는 경향이 있어, 장군과 대통령은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을 고집한다. 한 실험에서 한 명의 사람을 보여준 뒤 우리팀/ 상대팀이라고 소개하고 그 사람이 퀴즈를 100% 맞추는 모습을 보여주자 같은 팀일거란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으며, 상대팀으로 아는 사람은 단순히 그가 운이 좋은 것이라 판단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싶지 않은 것보다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는 ‘동기에 의한 추론’으로 확증 편향과 유사하다. 확증 편향이 우리의 신념과 일치하는 자료에 주의가 쏠리는 경향이라면, 동기에 의한 추론은 좋아하지 않는 것에 더 까다롭게 따지는 경향이다. 한 실험에서 카페인이 여성에게 위험하다는 기사를 읽게 하자,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는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들보다 해당 기사에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고 남성의 경우 자신과 상관 없다고 생각했기에 아무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따.
흡연이 폐암에 위험하다는 첫 발표를 보고 비흡연자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반면, 흡연자들은 많은 흡연자들이 장수한다거나 어차피 인생은 위험하다는 등의 논점 흐리기나 무작정적인 주장으로 반발했다. 직접적인 증거도 없지만 종교가 우리 주위에 가까이 있는 까닭은 세상이 공정하고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떄문에 사람들은 기도를 하고 실제로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 둘을 연관짓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는 못 본 척 지나친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런 오류들은 자기기만에 빠지게하고 결국에 우리 스스로를 속여 사회적 마찰 혹은 자기파괴적인 일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신념에 현혹되어 어떤 주장이 논리적인지 여부를 따지는 일을 게을리한다. 신념과 추론의 과정이 구별되지 않고 진화했기 때문이다. 삼단논법에서의 오류 a는 b이다. c는 b이다. c는 a이다. 처럼 인간은 간혹 결론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믿기 위한 이유를 만들어낸다. 한 가지 신념을 가지고 나면, 그 신념이 틀림을 알게되더라도 여전히 주장을 철회하지 않고 그 신념을 밀고 간다. 즉, 어떤 것이 참이라고 결정하면 그것이 참이기 위한 이유들을 만들어내는 형태이다.

우리는 대부분 우리가 지각한 (보고 듣고 맛본) 것들을 믿고 신념화하지만, 대부분의 문제는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닌 대중매체 등을 통해 접한 것을 믿기 때문에 발생한다. 또한 한 연구에 따르면 어수선한 분위기나 시간 압박이 있을 때 더 판별력이 떨어져 거짓된 것을 자주 받아들인다. 잘못된 정보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접한 생각 그대로를 자동적으로 믿는 것이다.
이 때문에 헛소문도 많이 들으면 사실처럼 생각하게 된다. 실질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해당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 어느새 참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선언적인 말이 아닌 단순 질문 형태이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왜 듣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일까?
그 이유는 지각을 위해 사용되던 기제로부터 신념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지각의 경우 우리가 보는 것의 대부분이 실제 참이다. 즉, 보는 그대로 믿어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때문에 직 간접적으로 대화 등을 통해 어떤 정보를 얻게 되면 곧바로 믿고 나중에서야 그것이 믿을 만한 것인지 따져본다.
선후관게가 바뀐 것이다. 의심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받아들이고 나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럴 일이 생긴다면) 생각해보는 것이다.
신념이란 우리가 참이라고 아는 것일까 참이길 바라는 것일까?..

3 선택과 결정
인간은 ‘의지의 허약함’을 가지고 있다. 10분만 기다리면 마시멜로우를 하나 더 먹을 수 있지만 당장에 참지 못하고 마시멜로우를 먹어버려 1개로 그친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케이크를 먹는 자와 위험함을 알지만 콘돔 없이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선택을 하는 뇌의 기재가 기억과 신념을 지배하는 기제만큼 엉성함을 시사하는 단서들이다.

우리의 뇌는 반사적인 행동을 하는 (음료를 마시기 위해 팔을 뻗을 때 방향을 어느 쪽으로 뻗어야 커피를 쏟을 확률보다 마실 확률이 높은지) 경우 합리성이 높으나, 예상 효용에는 둔감하며 돈을 상대적으로 계산한다.
100달러짜리 전자레인지를 사는데 25달러를 아끼기 위해 시내 반대편까지는 차를 몰고 가지만, 1000달러짜리 티비를 살 때는 고작 2.5%를 아끼기 위해 시내 반대편까지 가지 않는다.
둘 다 동일한 25달러를 아끼는 것 뿐인데말이다. 또한 손실에 더 크게 반응하기 때문에 날아간 비용에 집착한다. A와 B 여행지의 티켓이 동시에 있을 때, A로 놀러가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더라도 더 비싼 B 여행지를 선택한다. 낭비에 대한 걱정 때문에 더 재미 없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격과 가치를 혼동하기 때문에 잘 안 팔리는 목걸이의 가격을 할인하는 것보다, 다른 제품보다 비싸게 파는 것이 더 잘 팔리는 오류가 발생한다.

이런 오류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우리의 뇌가 ‘틀짜기’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표현방식만을 바꿈으로써 같은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를 혼동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라는 불치병에 대한 대안 b는 환자 600명 중 200 명을 살릴 확률이 100%이고, 대안 c는 600명 모두 살릴 확률이 1/3이고 한 명도 살리지 못할 확률이 2/3이라면 대부분 b안을 택한다.
하지만 대안 b를 택하면 환자 400명이 죽고 c를 택하면 1/3확률로 아무도 죽지 않거나 2/3 확률로 600명 모두 죽는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이 ‘틀짜기’는 광고주와 정치인이 애용하는 전략인데 실제로 ‘사망세’라는 단어보다는 ‘상속세’가 덜 불길하게 들리고, 범죄율 4% 도시보다는 범죄 없는 비율 96% 도시가 듣기에 좋다.
이처럼 맥락, 혹은 단어만 바꾸는 것으로도 우리의 인식은 다르게 받아들인다. 어떤 광고에서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부정적인 이미자가 아닌 유쾌한 연상을 불러일으킨다면 그 상품은 판매율이 높을 것이다.
차를 사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약 2배다 더 차를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기에, 자동차 딜러가 사람들에게 ‘차를 살 계획이 있는지’를 묻기보다 /차를 언제 살 계획인지’ 묻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인간은 먼 미래보다는 가까운 현재를 더 중요시한다. 일주일 뒤의 간식을 정할 때 지금 당장 배고픈 사람은 초코바와 과자를 선택할 확률이, 지금 배부른 사람은 건강한 사과와 바나나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
당장의 1달러가 1년 뒤의 1.2달러보다 가치있어보이는 이유는 복리가 오르는 속도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관적인 미래가 멀리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는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되지 않았기에 먼훗날의 큰 이득보다는 당장의 작은 이득이 더 커보일 수 있으나 국가가 금리와 시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지금 시대에 현재만 중시하는 태도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미래보다 현재를 더 우선시해 다이어트를 하면서 팝콘을 먹는 경우가 클루지라는 증거는 몇 시간 후에 후회한다는 점이다. 멍청한 짓을 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멍청한 짓이라고 인지하지만 우리는 급박하거나 나태할 때, 주의가 산만할 때 등 여러 경우에 숙고체계를 외면하고 단순히 먼저 생긴 선조체계를 자연스레 따른다.
결국 우리는 논리와 정서 사이에 긴장이 생길 때 감정이 개입하게 되고 선택을 그르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돌고래를 위한 환경개선사업과 농부의 피부암발병을 막기위한 사업 중 중요도를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부를 위한 연구를 더 중요하다고 대답한다. 인간과 돌고래의 목숨 중 인간이 더 귀하다는 것이나, 실제로 어디에 투자할건지를 물으면 귀여운 돌고래에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할거라 답한다.

이 외에도 행복한 사람들의 얼굴을 본 실험자들이 슬픈 얼굴을 본 실험자들보다 실험에서 준 신 음료를 더 많이 마시고 더 많은 값을 지불할 용의를 보였고 성직자가 가난한 환자를 위해 신장을 기부했다는 뉴스를 들은 이들이 살인을 저지를 뉴스를 본 실험자들보다 이후 실시된 게임에 더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실험실에서 게임을 이기면 쿠키를 준다는 실험을 했을 때, 단순히 쿠키에 대해 들은 이들에 비해 실제 쿠키를 보고 냄새까지 맡은 이들은 더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배고픔) 야한 동영상이나 이야기를 들은 남성들은, 콘돔 없이 (주위에 살 가게도 없는 상태) 처음 만난 여성과 관계를 맺을지에 대한 질문에 더 높은 확률로 승낙한 실험들(성욕)을 보아할 때 사람들이 합리적인 사고에 개입되지 말아야 할 것이 개입된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보여준다. 우리의 도덕적 잣대, 도덕적 판단을 결정을 내릴 때 서로 다른 뇌 영역이 움직인다. 전차가 그대로 달리면 5명이 죽고, 조치를 취하면 대신 1명이 죽는다는 가정하에 단순 스위치만 누르는 것은 선택하지만, 대신 다른 1명을 밀어야한다고 질문이 바뀌면 부정적인 대답이 들어온다.
한 남매가 비밀스럽게 둘 만의 비밀로 관계를 맺었고, 2중 피임과 서로의 감정이 상하지 않고 1회성에 그치게 끝났을 때, 사람들은 일단 그런 일은 잘못되었다고 하지만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명확한 이유는 찾아내지 못한다. (근친교배x-이중피임, 서로 상처받지 않는다는 가정)
우리의 반사체계와 숙고체계의 경계가 분명했다면 우리는 이런 클루지를 겪지 않았을테지만, 우리는 두 체계의 어중간한 결합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순간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반사 체계가 숙고 체계보다 뛰어나기도 하고 (브레이크를 밟아야할지 등의 상황) 숙고 체계를 제대로 이용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언제나 신중한 선택이 최선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본능을 맹목적으로 믿어서도 안 된다. 신중한 판단 대신 취약하고 편향된 무의식적 반사체계에 의존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틀에 박힌 일을 처리할 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반사 체계와, 틀을 벗어나 생각할 때 유익한 숙고 체계는 뚜렷하게 나누어져있다.

4 언어의 비밀
우리의 언어는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혼란을 일으키거나 헷갈리게 하는 요소가 많이 존재한다.
완전한 언어라면 애매하지 않고 체계적이고 안정되고 중복되지 않으며 우리의 모든 생각을 표현해낼 수 있어야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고양이과인 재규어, 퓨마 등과 ‘캣’의 발음은 완전히 다르고 정작 비슷한 발음을 가진 캐틀은 ‘소’다.
인간의 언어 속 애매함은 예외라기보다는 상례에 가까운데, 예를 들어 hit(치다)는 때리기에서 히트곡까지 무엇이든 뜻할 수 있고 스페인어에서 주어가 생략된 경우 3인칭 동사 ama. 를 문장으로 사용한다면, 문장으로서 완벽하지만 주어가 그, 그녀 등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인간의 언어는 중복성을 가져 많은 중복어들이 존재하며 (모든 점에서=for all intents and purposes), 막연함의 문제도 가지고 있어 ‘밖이 따뜻하다’고 말한 경우, 몇 도이면 따뜻한건지 알 수 없다. 돌이 쌓여있을 때 ‘무더기’라는 표현을 하고 싶을 때, 돌이 몇 개나 쌓여야 무더기라고 표현할 수 있는지도 모호하다.
우리는 단어나 문장이 정확하지 않더라도 언어의 불안정함이나 막연함을 대체로 의식하지 못하는데, 이는 언어를 해독할 때 문법에 담긴 정보를 기존에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콕집어 말하지 않아도 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라는 말 자체가 언어의 부족함을 증명한다.
비교적 온전한 언어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시도했으나, 결코 정착한 언어는 없었고 가장 온전한 형태를 지닌 언어는 컴퓨터가 사용하는 언어가 있으나 컴퓨터 언어가 인간의 마음에 부자연스럽기에 실제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음성체계는 호흡, 발성, 조음 세 가지로 이루어지고 한정적인 소리 이내에서 말을 한다.
여러 요소들에 의해 박자를 조정하지만, 말이 빨라지는 경우 혀가 꼬이기도 한다.
우리 언어 체계는 첫째 소리를 산출하면서 이미 둘째 소리를 준비하기 때문에 속력은 높일 수 있지만 많은 연습이 필요하고 해석에 어려움이 따르기에 간혹 다른 사람의 소리를 제대로 못 알아 듣기도 한다.

까다로운 사람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젊은 세대가 ‘말을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언어가 고정된 의미가 아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우리가 ‘그런대로 쓸 만한’ 해결책으로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리라.
우리 언어는 불완전한 증거를 바탕으로 곧바로 판단을 내리는 ‘부분 일치’의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완전한 전체를 볼 때까지 기다리는 ‘완전 일치’의 논리와 다르게, 나무 전체를 보지 않고 일부만 보고도 ‘나무’라고 판단 내리고, 플라스틱으로 된 컵도 ‘글라스’라고 부르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개념을 정의하는데는 일부만 있어도 가능하다.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부분 일치의 논리가 단어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언어 체계 중 수량사 (약간, 대부분, 몇몇)나 총칭사 ((모든) 개들은 다리가 네 개다)도 모호하다.
유명한 언어학자 촘스키의 경우 단어 개개별은 클루지일지라도 문법 그 자체는 거의 완벽한 형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 언어의 문법적 요소가 엄청난 능력을 가졌다면 우리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추가적인 노력(몸짓, 손짓)이 필요할리 있을까?
문장 속 문장이 있는 경우, 그 뜻이 모호한 경우 등 언어는 혼란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버린 사람들은 떠났다 (people people left left) 등의 문장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기 쉽다.
언어 체계는 단순하지 않아서 전하고자 한 말의 요점은 찾을 수 있어도 방금 한 말을 어순 그대로 적어보라고 하면 쉽게 적지 못한다.
‘탁자 위에 상자 안에 토막을 놓아라’는 문장의 경우, 강자 안에 있은 토막을 탁자 위에 놓으라는 것인지 아님 어느 토막을 집어서 탁자 위 상자에 넣으라는 것인지 두 가지 의미를 지니지만 근처에 토막이 1개 뿐인 경우 다른 의미도 가질 수 있다는걸 눈치 채지 목한다. 우리는 언어 외의 요소도 이용하여 추론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요령은 단서가 부족할 때는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메일이나 전화를 이용하는 경우 오해의 소지가 잦아진다.
언어는 그런대로 쓸만하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다. 완벽했다면 애매함이나 무의미한 불규칙성 없이 사람들이 뜻하는 바를 그대로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5 위험한 행복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은 우리의 행동을 인도하도록 진화했다는 대답이 표준적이다. 인간이라는 종을 널리 번식시키도록 이끌었다는 말이다. 그럴싸해보이는 대답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실질적으로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티비보기, 술마시기, 비싼 레스토랑 등이 우리의 유전적 이익을 주지 못해 의아하다. 심지어 성관계 역시도 더이상 생식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 더 이상 유전자를 위한 활동보다는 전반적인 안녕, 성공 수준, 주변인들의 인정 등을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기엔 삶에 크게 도움되지 않은 티비보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운동이나 친구 사귀기 등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인간은 이 외에도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걸 알면서도 술, 담배에 손을 댄다. 중독은 사람을 환락의 길로 이끌 수 있다. 순간의 행복에 자신의 결정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쾌락이 동기 유발자라는 생각은 일리가 있지만 쾌락 그 자체는 결국 클루지이다. 유전자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쾌락이 존재한다면 왜 우리는 위험한 스포츠(스키, 스오보드)를 즐겨탈까?
왜 몸에 안 좋고 장기적으로 동맥에 손상을 끼칠 수 있는 디저트에 손을 뻗을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쾌락을 지배하는 숙고체계와 선조체계, 둘이 갈등을 일으킬 때 선조 체계에 무게가 쏠린다는 사실이다. 당장의 디저트를 먹은 쾌락이 참았을 때보다 큰 것이다.
두 번째는 쾌락을 주는 기제가 과거부터 있어왔고 단순히 설탕은 포유동물에게 필요하니 과일은 좋은 것이다. 라는 과일에 대한 기호가 생긴 후, 단순한 과일과 과일맛 합성착향제를 구별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인간은 우리의 쾌락 중추를 속일 수 천가지 방법을 찾아냈고 수박맛 캔디는 우리에게 좋지 않다.
인터넷 중독도 현대적인 강박 충동이다. 우리 선조들 중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관심없는 이들보단 사실들을 즐겨 수집하는 이들이 도태되지 않을 확률이 높았고 우리에게까지 온 것이다. 작은 정보 하나하나를 알아가는 것이 쾌감을 주기에 아무 생각없이 연예계 가십 등의 기사를 연이어 클릭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통제에 대해서도 갈망을 가지고 있는데, 불규칙한 소음을 들어야허는 조건 속에서 소음을 멈추기 위해 누를 수 있는 버튼이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거의 누르지는 않는) 소음을 멈추기 위해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믿는 피실험자들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버튼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이 이에 해당되는 예이다. 우리는 통제감을 좋아한다. 비현실적인, 너무 완벽해서 실제 세계에는 없는 ‘과상 자극’인 바비인형이나 에어브러시로 만들어낸 모델 얼굴, 인공적인 나이트클럽 드럼소리 등은 극단적인 흥분과 희열을 준다. 비디오게임이 이의 완벽한 예인데 우리에게 통제감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공할 수 있을정도만 도전하게 하고 통제감을 잃는 순간 우리는 게임을 그만둔다.

음악, 영화, 비디오 게임 같은 오락 형태들은 우리 유전자를 퍼뜨리거나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즐김의 대상이 되도록 문화적으로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쾌락은 인간 종의 생존을 촉진하도록 완벽하게 조율된 것들이 아닌 느슨한 정도의 상관관계만 있는 것들이다.
대부분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오래 가지 않는다. 작은 초코바 하나는 순간적으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지만 곧이어 그 이전의 마음 상태로 돌아가게 하고 영화, 텔레비전, 콘서트 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단기적인 쾌락이 아닌 장기적인 목표는 다를까? 약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연구하는 과정을 거쳐 ‘교수’가 되면 순간은 행복하지만 그 역시도 오래 가지 않고 다른 근심이 생기며, 10년 여 시간 동안 노력했지만 ‘교수’직을 얻지 못한 사람 역시 슬퍼하지만 그 슬픔이 평생 가지는 않는다.
우리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거기에 익숙해지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순응’이라고 한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소음에 우리는 자연스레 익숙해지곤 한다.
로또 당첨자는 새로 생긴 재산에 점차 익숙해지며 가난한 사람도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처지에 점차 익숙해지며 초기에 느꼈던 감정은 금새 사라지기 마련이다.
순응의 힘은 돈이 왜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은지를 설명해주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절대빈곤 이상의 사람들이 절대빈곤 이하의 사람들보다 행복하긴 하지만, 재산이 진짜 많은 사람이 그냥 많은 사람보다 재산만큼 더 행복하지는 않다. 수입이 늘었다고 그만큼 행복도도 증가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새로 산 아우디도 처음 운전할 때야 행복하겠지만 결국에는 다른 차와 마찬가지로 이동수단일 뿐이다.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는 것은 절대적 부가 아닌 상대적 부, 결국 남보다 더 버는 것이다.
실례도 평균 수입이 900만원인 직장에서 800만원을 버는 것보다, 평균 수입이 600만원인 곳에서 700만원을 버는 사람이 더 행복해한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한다. 이는 행복 자체가 클루지스럽다는 것을 시사하는 바이다. 자신의 처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깊게 생각하는 이들보다 더 행복한 경향이 있다고 한다. 행복에 신경쓸수록 행복과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진화는 우리가 행복하도록 우리를 진화시킨 것이 아닌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도록 우리를 진화시켰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고, 우리 자신을 속이려고 한다. a학점을 받은 학생은 성적을 받아들이고 c학점을 받은 학생은 이 시험이 얼마나 공정하지 못했는지부터 생각한다. 자동차 사고가 나도 나 자신보다는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생각부터 하게도니다. 이는 ‘방어기제, 동기에 의한 추론’이라고 보인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실패하면 언제나 합리화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복 온도계를 속이며 살아간다.
‘인지부조화’에 대한 한 실험이 있다. 지루한 꽃꽂이를 시키며 20달러를 주고, 한 팀에게는 1달러를 주었을 때, 20 달러를 받은 이들은 이 행동이 무척 지루하다고 답변했지만 1달러를 받은 이들은 자신이 쓸데없는 시간을 허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에 무척 재미있었다고 말하곤 했다.
우리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다. 진리가 우리 편이 아닐 때면 우리는 기꺼이 우리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 사람들은 부당한 세계보다는 정의로운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6 심리적 붕괴
대부분의 클루지들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임시방편 개념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인간의 뇌 역시 망가질 수 있다. 분별력이나 주의력의 순간적인 착오로 후회할 일이나 교통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컴퓨터의 경우 복잡한 계산을 하다가 실수를 하는 경우는 없지만, 인간은 인지적 오작동을 자주 일으키기에 그에 따른 표현도 분명히 존재한다. 실수, 실패 등이 그러하다.
왜 우리는 실수를 할까? 보통 다른 것이 신경쓰이거나 피로할 때 우리는 건강식보다 인스턴트에 손을 뻗게 된다. 가장 위급할 때 자연스레 숙고체계보다 반사 체계(더 낫기 때문이 아니라 더 오래되었기 때문에)에 우선권을 부여하게 된다.
우리는 때때로 일할 때나 운전할 때, 다른 생각에 빠지곤 하며 오늘의 할일을 내일로 미루곤 한다. 이는 우리 클루지의 징후이다. 상위 목표보다 덜 중요한 목표에 의해 어떻게 일상적으로 침해받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뒤로 미루고 싶어하는 이유는 즐기지 않는 것이고 꼭 지금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에 비해 미래 가치를 낮게 여긴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은 때때로 무너진다. 일부 신체 장애는 이에 상응하는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장애는 그렇지 않다. 때문에 어떤 장재가 보상적 특성을 지닌다고 해서 이런 특성이 장애 비용을 상쇄하지도 않고 왜 장애가 진화했는지 설명해주지도 못한다.
진화는 우리 정신생활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결과만 중시하기에, 장애가 있더라도 번식할 수 있다면 해로운 유전적 변이들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고통 받는다는 사실과 무관하게 인간의 종 안에서 존속할 수 있다. 장애는 단순히 우연한 사건들에 의해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담배나 마약, 인터넷 등에 중독되는 것은 장기적인 이득과 단기적인 이득 사이의 비율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데, 누구나 중독이라는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람이 때때로 통제력을 잃을 때는 몇 가지 클루지들의 장난이 작용한다. 이런 클루지 때문에, 그리고 정상적인 사람들이 흥분을 가라앉히는데 사용되는 억제기제들이 결여됐을 때 정신질환이 발병하거나 악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편집증 환자는 자신의 편집적 신념을 확증해주는 증거들에만 주목하고 그것에 반대되는 증거들은 무시하는 악순환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울증 환자 역시 다른 방식으로 현실감을 잃곤 하는데 이들은 부정적인 측면에만 주목하여 현실을 왜곡되게 지각하곤 한다. 우울증은 상실이 과장되며 시작되고 슬픈 기억이 다시 슬픈 기억을 불러오는 반복의 패턴을 가진다.
정신질환은 우리가 진화해온 과정의 특이한 측면들에 의해 강화될 뿐만 아니라 그것들로 소급될지도 모른다. 즉, 우리 모두가 (정신장애가 있든 없든) 공유하는 신경적 취약성이 정신장애의 시초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전자 그 자체가 정신장애의 분명한 한 요인이라면 진화는 어떤 식으로든 장애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 마음 그 자체가 클루지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13가지 제안
우리는 언어, 문화, 기술적으로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지만 우리가 지닌 유전 형질은 우리와 같은 생물이 존재하기도 전에 진화한 것이기 때문에 오점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신체에서 오점이 있는 부분은 사랑니, 퇴화한 꼬리뼈 등 잘 알려져있지만 마음의 불완전성은 잘 논의되어오지 않았다. 아마도 인간의 인지능력이 완벽하지 못한 것이 드러나는 것을 사람들이 원치 않았고 여전히 창조론의 인기(진화론의 근거가 탄탄함에도 불구하고 창조론을 믿는 이들이 많음)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불완전함을 깨달았다고 해서 반드시 불완전함을 고치려할 필요는 없다. 컴퓨터가 인간보다 나은 부분은 활용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우리의 불완전함 중에서는 그대로 받아들여야하는 것도 있고 대안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1)우리의 불완전함 중 사고력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은 대안이 되는 가설을 함께 고려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집착하는 것과는 다른, 반대되는 생각이나 가능성을 성찰할수록 사고능력은 개선될 것이다. 2)문제의 틀을 다시 짜고 질문을 재구성하라: 근무시간이 시간제로 줄어든다면 이를 임금의 삭감으로 볼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로 볼지. 한 문제에 대해 다린 방식으로 생각해보라 3)상관관계가 곧 인과관계가 아님을 명심하라: 신발 크기와 일반 지식 사이에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실제로 큰 신발을 신는 사람들이 역사와 지리에 대해 더 잘 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어린 아이일수록 발 크기가 작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지, 인과관계가 아님을 인지하라

4)표본의 크기를 잊지 마라: 표본의 크기가 클수록 신뢰도는 높아진다. 한 게임에서 4타를 친 야구선수가 한 시즌 내내 4타를 치는 것은 같을 수 없다. 우리는 표본지 매우 작을 때조차 우연이 아닌 ‘설명’을 찾으려 한다. 주식시장이 하루동안 급변한다고 해서 반드시 ㅇㅇ사의 발표 때문임이 아님을 잊지마라

5)자신의 충동을 미리 예상하고 앞서 결정하라: 사이렌의 유혹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를 돛대에 묶은 오디세우스를 배우자. 배부를 때 일주일치 식품을 쇼핑하는 것과 배고플 때 쇼핑하는 것은 다르다. 유혹의 대상이 눈 앞에 있을 때 우리는 더더욱 순간의 충동에 휩싸이기 쉽다.

6)막연한 목표만 정하지 말고 조건 계획을 세워라: 단순히 살빼야지 보다는 3키로를 빼겠다가 좋고, 그보다는 x=y이다 의 형태로 바꾸는 것이 가장 좋다. 예를 들어 ‘감자튀김을 보면 그것을 멀리하겠다’의 형태로 계획을 세워라

7)피로하거나 심란할 때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마라: 이는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하는 것과 같다. 감정적인 결정이 아닌 합리적 결정을 선호한다면 휴식과 집중이 필요하다. 8)언제나 이익과 비용을 비교 평가하라: 이 돈을 여기 쓰지 않았을 때의 ‘기회비용’도 염두하기-지금 10만원을 주식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이 10만원을 어디다 쓸 수 있을지, 주식 투자가 가장 가치있는 일인지 기회비용을 고려해볼 것 9)누군가 나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기: 자신의 대답을 누군가에게 정당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덜 편향된 결정을 내린다. 사람이 눈이 그려진 무인카페에서의 지불 금액이, 단순히 꽃이 그려진 무인카페보다 크다.

10)자신에게 거리를 두어라: 모든 것은 현재의 순간에 더 중요하게 보인다. 자동차가 나를 향해 돌진한다면 자동차를 피한다는 단기 목표의 달성에 온 힘을 기울여라.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기. 초코케이크를 먹기전에 건강 유지, 다이어트라는 목표보다 지금 순간의 맛있는 행복함이 큰지 생각해보기

11)생생한 것, 개인적인 것, 일화적인 것을 경계하기: 자신에게 거리두기의 연장선으로, 믿을만한 업체에서 통계학을 바탕으로 A사의 제품이 좋다는 평과 결과와, 한 사람이 직접 쓴 B제품이 좋다는 글을 보여주었을 때 사람들은 A사의 제품이 더 좋다는 것을 알지만 본인이 무엇을 선택하겠냐고 물으면 B를 고른다. 현혹되기 쉬운 것에 넘어가지 말자

12)우물을 파되 한 우물만 파라: 결정을 내릴때 갈팡질팡 우물쭈물하다간 둘 다 놓치기 쉽다.

13)합리적으로 되려고 노력하라: 되도록 합리적이고 분석적으로 답하라고 스스로 한 번씩 되뇌이기. 단순히 되뇌이는 것만으로도 합리성은 올라간다.

클루지가 중요한 이유는 많지만,
(1)학교에서는 단순 암기를 시키지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인생을 꾸려나가는 유용한 방식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2)정보화시대에 요즘 아이들은 정보를 찾는데는 어려움을 겪지 않지만, 해당 정보가 믿을만한 것인지, 신뢰성이 있는 자료인지에 대한 해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3)우리는 우리에 대해 너무 모르기 때문에, 일상적 논증에 대해 오류를 찾아내는 법에 대해서는 모른다. 인과관계와 상관관계의 차이를 스스로 구별할줄 알아야 한다.
(4)메타인지. 철학에 대해 철학자가 한 이야기 보다는 내가 ㅇㅇ에 대해 아는지, 어떻게 아는지 스스로의 지식을 의심하고 시험해봐야 한다.